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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집사람이 좋아하던 남자

by 소꾸호 2000.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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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학생들이 만든 잡지에 올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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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그 남자를 만난 것은 5월의 싱그러움이 햇살로 빛나던 잠실 야구장에서였다. 벌써 5년도 더 된 일이지만 지금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 당시 나는 박노준을 좋아하던 꼬마 야구팬이었던 이래 별로 스포츠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야구장을 가게 된 후 응원의 즐거움과 넓게 펼쳐진 그라운드의 시원함 때문에 한창 야구 관람에 열을 올리던 중이었다.

운 명의 그날, 시합 전에 연습하는 선수들을 보려고 일부러 시합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야구장에 갔다. 나는 한화 이글스의 팬인데, 간판스타라고 할 만한 장종훈이 연습인데도 연신 홈런을 쳐내며 사람들을 경탄하게 했고, 여러 선수들이 잔디 여기저기에서 타격 연습을 하거나 공을 주고 받으며 그날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 땀 흘리는 선수들 사이에서 처음 그를 보았다.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하는 서쪽 하늘의 노을을 온 몸으로 받으며 묵묵하게, 너무나 열심히 외야 펜스를 따라 뛰고 있는 붉은색 유니폼! 마라톤 선수 같은 고독함이 그에게서 보이는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 보니 등에 55 정민철이라 적힌 흰 글씨가 보였다. '정민철이라면 한화의 에이스인데, 참 열심히 하는구나. 거만하지 않고 연습도 열심히, 코치 말도 잘 듣고...' 그 때만 해도 그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던 나에게,그는 연습하는 한화 선수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바라본 전광판 투수란에서 나는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날의 등판 투수는 그가 아니었던 것이다. '경기 날도 아닌데... 정말 선수들은 연습도 실전처럼 하는 것일까? 어쨌든 열심히 하는 모습, 참 보기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이후로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었다.

그의 경기를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시원하게 뿌려대는 강속구, 타자와 당당하게 맞서 잡아내는 탈삼진, 교묘한 두뇌 피칭 등등 그는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기 충분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그런 경기들을 볼수록 나는 점점 그의 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기사를 스크랩하고, 야구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응원하고, TV로 중계되는 그의 경기를 녹화해서 돌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의 열렬한 팬이 된 것은 동생이 전해 준 그의 프로 데뷔 시절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전고를 나왔는데(참고로, 나는 대전고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여고를 나왔다) 졸업하던 해에는 실력이 신통치 않아서 한화 팀에도 거의 연습생 수준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겨울의 추위를 피해 가는 그해 호주로의 정기 연습에도 참가하지 못했다는 것. 사회에 내딛던 첫발이 그렇게 힘들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그가 보여주던 에이스로서의 위치와 비교해 볼 때 상상도 안 가는 일이었다.

그럼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것을 무엇일까? 동생이 이어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정말 거의 울 뻔했다. 호주 연습에도 참가하지 못했던 정민철은 그해 겨울을 절망 속에서 무릎 끓었던 것이 아니라, 눈 내리는 대전고 운동장에서 아직도 창창하게 남아 있는 미래를 생각하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 것이다. 잔디도 없는 꽁꽁 언 땅 위에서, 추위로 곱은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공을 던지면서도 자신의 야구 인생이 여기에서 중단되진 않을 거라고, 자꾸만 주저앉으려는 자신을 추스렸던 것이다. 그런 의지 덕분에 그는 다음해에 승률 1위, 그 다음해에는 탈삼진과 방어율 부문에서 1위를 했다. 그가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에게 다가온 그 절망을 다지는 기회로 삼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결과였다.

나는 그날 이후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를 생각해 왔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절망들. 다시는 빛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어둠의 시절들이 내게 올 때면 나는 눈발 흩날리는 모교에서 고독과 싸우며 절망을 건너려고 공을 던지던 그를 기억하며 용기를 내곤 했다.

사 실 요즘 정민철의 성적은 썩 좋지는 않다. 거듭된 부상과 졀장으로 옛날의 컨디션을 되찾지 못한 탓이다. 성급하 어떤 이는 이제 정민철의 시대는 갔다고 하며 내 마음을 아프게도 하지만, 나는 그가 여기서 끝날 거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그의 골수팬이기 때문에 가지는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다. 절망을 훌륭히 이겨낸 뒤에만 지을 수 있는 웃음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 담이지만, 이 글은 두 번째로 작성된 것이다. 첫 번째 글은 키를 잘못 누르는 바람에 날려 버렸다. 벌써 컴퓨터로 10년 가까이 문서를 작성해 왔지만 처음 겼는 실수였다. 프로그래머 친구에게까지 도움을 청해 봤지만 복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절망했다. 이 글을 쓰고 나 후 해야 할, 순서를 기다리며 나를 옥죄고 있는 다른 일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나는 또다시 정민철을 생각했다. 이런 시련쯤 이겨내야 웃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그의 당당함을 떠올렸다.

6반 친구들도 각자 나름대로 절망을 건너는 방법을 한 가지쯤 가지고 살면 좋겠다. 살아가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은 요즘같은 때에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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