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학번을 선발한 87년 12월의 대학입시는 그전까지의 선시험, 후지원방식에서 선지원후시험방식으로 변경이 된 첫 시험이었다.
그 전까지는 먼저 학력고사를 보고, 그 점수가 나오면 그 점수에 맞는 학교를 지원했는데, 그 해에는 먼저 학교를 지원을 하고 학력고사를 보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시험도 지원한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변경이 되었다.
학력고사가 있기 얼마 전 대전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시험을 보러 서울에 가는데 시험끝나고 면접시험끝날 때까지 잠시 서울에 머무른다고, 24일 혹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만나서 숭의여대음악당에서 하는 "10대들의 쪽지" 연말공연이 있는데 같이 가자는 반가운 내용.
10대들의 쪽지란, 김형모란 분이 10대들의 고민등에 대한 상담내용등을 편지로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정기적으로 발행했던 작은 뉴스레터인데, 1년에 한 번 청소년들을 초대해서 콘서트를 개최하였고, 학력고사가 끝난 다음다음날 같이 관람을 하게 되었다.
시험도 끝난 홀가분한 마음과, 크리스마스 이브, 그리고 반년만에 다시 만나는 들 뜬 마음에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싶어, 나는 당시 유행하던 홀로서기의 후속신간 "홀로서기2 : 점등인의 별"을 서점에서 구입하여 약속장소로 갔다.
시험은 잘 봤는지, 어떤 학교를 서로 지원했는지 그럼 이야기들을 하며 좋은 노래와 좋은 이야기들을 듣고 대학입시에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기원을 해주며 헤어졌다.
그 날, 시집을 선물하며 장난스럽게 메모를 하였다.
----------
To. ㅈG ㅈG (새마을 수련회 때 정한 닉네임이 "찌찌"였기 때문에 이렇게 적었나보다. 참고로 나는 "까마데우스")
모든 걸 왕창 축하해!
크리스마스도,
생일도,
만난 지 1년되는 것도
그리고, 시험 잘 봤을 것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홀로서기'가 아닌 '홀로서기2'를 선물해. 잘 읽어봐.
'홀로서기' 외운 거 시험한다고, 좋아. 외우지 뭐.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그 다음, 그 다음.....
으.. 역시 내 암기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군..에이 참,
다음에 멋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안농!
1987.12.24.
잘 생긴 친구가..
---------------
이 메모를 내가 다시 보게 되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그 때는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친구는 대전으로 내려갔다.
한 달 정도 뒤, 내 생일에 대전에서 우편으로 한 권의 노트가 도착했다.
학력고사 시험이 있던, 22일부터 내 생일 전날까지의 약 한달동안, 본인의 이야기를 하얀노트에 매일 기록하여 "생일을 축하해"라는 이쁜 표지와 함께 나에게 생일선물을 보내주었다.
주위에 보는 친구들마다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녔는지.. 이 선물이 남아있으면 참 좋았을텐데 지금 생각하면 가장 아쉬운 일이다..
나는 나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합격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