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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연

6. 1988년

by 소꾸호 2020.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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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이 있었던 해에 대학을 입학을 하게 된 우리는 88학번이 되었다.

 

친구도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이 시작되었고, 이제 전화만 하면 얼마든지 바로 만날 수 있는 공간에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러나, 서울과 대전에 살던 때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고등학교때보다는 조금 더 자주 연락을 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연락은 학보를 통해서 주고받았다.

 

"석호야, 너 우편함에 친구한테 학보 와 있더라"

 

학교에서 나를 만난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자기 학교학보를 친구들에게 우편으로 보내주고는 했는데, 친구는 나에게 매주 자기학교 학보를 보내며, 조그만 메모를 보내주었다.

 

그 메모를 통해 어떻게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는지 소식을 알려주었다. 공부를 가르치는 학생이 말을 잘 안듣는 이야기, 친하게 된 친구이야기, 동아리이야기, 새마을수련회때 친하게 지내던 울산친구 익주이야기들을 나에게 보내주었고, 나는 답장으로 우리학교이야기, 교회이야기, 웃긴이야기등을 들려주었다.

 

어느날, 자기가 속해있는 동아리 노래패 공연이 있으니 구경오라고 초대를 하였다. 친구의 학교에 가서 공연이 끝나고 축하를 해 줄 때 동아리 사람들이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수줍어 하며 잘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런 친구를 보면서 나도 누가 나에게 그 친구는 누구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친한친구? 여자친구?

 

돌아오는 길에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선물받았다.  많은 깨우침을 준 책이니 나도 분명 좋아할거라고. 그 책을 읽고 나도 처음 역사라는 문제에 대해, 사회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울림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일반공무원이었던 나는 대학교 입학 때부터 어머니에게 데모하지 말고 조용히 학교생활하라는 말을 학교갈 때마다 듣고 있어서 88학번치고는 참 무지할정도로 사회문제에 대해 알지 못하였는데, 그 책을 읽고 처음 사회에 조그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주저없이 말하곤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가끔 카세트에 녹음하여 선물로 주기도 하였고,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발매되면 나에게 테이프를 사서 선물을 주고는 했는데, 겨울바다가 들어있는 푸른하늘의 테이프를 내게 주며 나도 좋아해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여자사람친구인듯, 여자친구인듯 한 사이로 1학년을 보내가고 있을 때 쯤 아버지께서 89년 8월부터 3년간 일본 오사카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89년이 되면, 형은 군대에 가려고 계획하고 있고, 동생은 고3이 되어 어머니도 동생을 챙겨야 하는 상황. 집에서는 아버지 혼자가면 외로우니 내가 학교를 휴학하고 아버지와 같이 생활하면서 일본어공부를 하고 귀국하고, 동생 입시가 끝나면 엄마가 나중에 가는 방향으로 하자고 하였다. (실제로는 엄마는 결국 돈버느라고 마지막 3개월만 같이 지내게 되었지만….)

 

그렇게 나는 1학년만 다니고 휴학할 생각을 하였고,  여름이 되면 나는 일본에 가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만난 겨울방학의 어느 날.

나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매우 아쉬워하였다. 자주 못봐도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는데, 서울에 내가 없으면 많이 무서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도 그랬다. 같은 서울 하늘 안에서 보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쉬웠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도 요즘 자신의 꿈에 대해, 미래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운명인지 모르지만, 내가 일본가는 준비를 하기위해 2학년에 들어가며 휴학을 한 것과 동시에, 친구도 교사가 되기 위하여 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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