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와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박** 123-4567" 이라고 적혀있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
설마 내가 아는 그 친구? 결혼은 했을까? 목표하던 교사는 되었을까? 왜 전화했을까? 반가운 마음에 메모를 보자마자 여러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우리집은 아침에 전부 나가기 때문에 집이 텅텅 비어 낮에는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날은 형수친구들이 형집에 놀러오기로 하여 형이 잠깐 집에 와서 쉬고 있었다. 그 때 친구에게 전화가 온 것을 형이 받아서 메모를 남겨주었다.
매년 수첩이 바뀔 때마다 나의 전화번호를 옮겨적었는데, 몇 년간 연락이 되지 않았고 이번에 마지막으로 연락을 해보고 연락이 안되면 더 이상 옮겨적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형이 그 날 본가에 와서 쉬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 친구의 수첩에서, 그 친구의 인생에서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강남역 맥도날드에서 만난 친구는 하나도 변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였다.
대학을 졸업하며, 바라던 국어교사가 되었다는 이야기, 대전에서 가족들이 전부 서울로 이사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 등등 그동안 비어있던 시간을 채우기라도 하려는듯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게 오랜만의 재회를 한 후 우리는 점점 자주 만나기 시작하게 되었고, 조금씩 데이트 같은 느낌으로 발전해가기 시작했다.
다시 만나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 조금 멀리 여행을 가보기로 하고,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 여행을 다녀왔다.
밤에 청량리역을 출발한 기차는 새벽이 되어 정동진에 도착했다. 밤새워 기차에서 이야기를 하고 맞이한 정동진의 떠오르는 해를 보며, 이 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정동진에서 강릉으로 이동하여 경포대 앞 우체국에서 서로에게 엽서를 썼고, 서울에 돌아와 도착한 엽서를 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기억하는데 청혼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마 프로포즈라고 특별하게 한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자고 하니, 그렇게 했고, 결혼날짜를 잡을까 했더니 당연한 듯 결혼날짜를 잡게 되었다.
그렇게 1999년이 되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