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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이야기

한일미래버스투어(서울근교) : 2015년 7월

by 소꾸호 2020.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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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이야기

여행준비도 해야하고 이사준비도 해야하는데 12일씩이나 하는 남편 일찍부터 나간다고 아침을 준비해 마누라덕분에 속을 든든히 채우고 오늘의 약속장소인 남영동 레인보우호텔에 도착을 했다.

830분정도에 전부 준비를 하여 준비된 버스로 퇴촌에 위치한 나눔의 집으로 출발.

오늘 투어에 참가한 사람은 일본에서 13, 한국에서 3.

나눔의 집으로 이동하면서 자기소개시간을 가지며 서로에 대해서 아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이라 서로 이미 아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는데 나처럼 한일양국과 관계있는 곳을 의미있게 돌아보기 위해 참가하신 분들은 3,4 정도인 같은 느낌이었다.

나눔의 집은 항상 번은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한일미래버스투어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투어에 첫코스로 방문을 하게 되었다.

도착 직원의 안내를 받아 소개영상을 잠깐 소장님과의 면담시간을 가진 , 할머니들이 1130분부터 식사시간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여 부랴부랴 할머니들이 계신 곳으로 이동하였다. 오늘은 할머니가 3분이 계셨는데 가장 나눔의 집에서 가장 젊다고 하시는 강일출할머니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가 많이 드셔서 정확하게 말씀은 하지 못하셔서 이것저것 추측을 하면서 이야기를 조합해야 했지만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에 대해서 느껴볼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할머니들과의 대화가 끝나고 전원 기념촬영. 한장은 그냥 아무 사진없이 찍고 두번째 사진은전쟁반대라는 팜플렛을 들고 찍자고 했다. 현재의 일본헌법은 상대방의 침략없이는 군대를 동원할 없도록 되어있는데 이번에 헌법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어 1시에 전국적으로 SNS 법을 반대하는 사진을 동시에 올리기로 되어 있는데 이곳의 문제의 출발점인 전쟁에 대해서 곳에서 반대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점심식사. 아침의 서먹서먹했던 분위기는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친해졌고 식사도중 1시가 되어 여기저기서 SNS 사진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시민운동이라는 것에 대해서 번도 크게 생각해 적은 없었지만 오늘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일본이 그냥 선진국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명성황후 생가방문”. 퇴촌에서 여주로 이동하니 여주시시의원이신이항진의원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다. 오늘 투어의 코디네이터분과의 친분으로 여주쪽 방문일정을 동행하시겠다고 나오셨다.

설명은 문화유산해설사님께서 주셨는데 어쩌다보니 내가 통역을 하고 있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혁명등 이름만 알고 있지 상관관계도 모르는 부분을 문화유산해설사님의 설명을 주의깊게 들으며 통역을 했더니 나도 어느정도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명성황후를 시해할 사용되었던 칼의 행방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 후쿠오카에서 오신 많은 분들이 본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그런 물건이 보관되고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놀라기도 하셨다.

기념관을 나와 생가를 바라보며 명성황후가 생가뒷편에 있는 무덤을 지키기 위해 민씨가문이 이곳에 살게 되었고 그런 배경이 있어 이곳에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의 세번째 코스는세종대왕릉”. 세종대왕릉은 효종왕릉과 거의 같은 곳에 있는데 보통 조선시대의 왕릉은 서울에서 40킬로 안에 만들어야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풍수가 좋은 이곳에 능을 만들기 위하여 80킬로나 떨어져 있는 여주를 남한강뱃길로는 40킬로가 떨어져있다는 것으로 하여 만들수 있었다고 한다.

풍수에 문외한인 일반인이 보아도 웬지 조선왕조를 600년이나 이어올 있게 원동력이 되지않았을까라고 생각될 정도의 양지바른 . 더운날씨가 아니라 기분좋게 영릉앞에까지 다녀올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일정신륵사방문”. 통일신라시대부터 있던 1000 고찰 신륵사에서 이항진의원님의 주선으로 주지스님과 같이 차를 마실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청곡이라는 법명을 쓰시는 주지수님은 차를 대접해주시면서 여러가지 말씀으로 본인의 진리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셨고, 잠깐의 환담 4대강사업으로 인해 절의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현장을 돌아본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숙소의 1층에서 오늘의 저녁식사. 7시정도부터 시작된 저녁식사가 10시까지 끝나지 않을 정도로 오늘 돌아본 곳의 감상, 한국에 대한 인연등에 대해 이야기로 밤이 깊어가는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숙소는 유스호스텔. 오랜만에 처음뵙는 분들과 같은 방에서 코고는 소리와 모기들과 함께 있는 추억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밖에서 아직도 떠들고 있는 청년들은 오늘 과연 잠이 들어 주기는 것인가?? ^_^

그렇게 12일중 첫날이 끝이 났다.

 

2일째이야기

 

새벽4시에는 시끄럽게 떠들던 대학생들도 꺼라고 기대를 했는데 아침 6시가 되야 겨우 조용해져 버렸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맞이한 이틀째 아침은 비가 부슬부슬.

 

유스호스텔식당에서 아침식사를 여주를 출발하여 제암리교회가 있는 화성시 제암리로 출발.

 

제암교회는 내가 속회있는 교회 교단과 같은 감리교제단이라 사건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 많이 기대가 되었다.

3.1운동이후 거센민중의 저항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마을의 장정들을 전부 교회에 넣고 못질을 불을 질러버린 사건인데,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3국인 스코필드선교사가 사진을 남긴 덕분에 아무도 변명할 없는 증거가 탄압사건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고 소개를 받았다.

 

평소라면 교회에 시간이었는데 다행히(?) 비슷한 시각에 도착하여 해설사님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견학을 있었다.

 

얼떨결에 당한 강제합병 10 ,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나라도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여 일어난 만세운동이 거센 탄압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결국에는 1945 다른 해외 나라들의 사정에 따라 대한민국이 독립을 하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곳에서 너무 열심히 설명을 해주신 해설사님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오사카에 유학을 다녀오신 .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출세하려는 욕심이 별로 없어서 좋아요라고 서로 이야기하며 다음에 한잔 하자며 헤어지셨다.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같아 굳이 술을 먹는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

설명을 들을 후에는 기념관 뒷편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번 투어에서 나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신 분이 기도를 하고 계셔서 잠시 뒷모습을 촬영해 보았다.

 

이어서 이동한 곳은 수원의 화성. 셰계문화유산이기도 화성도 오늘 처음 가본 . 이렇게 보존 성벽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오늘은 북문(장안문) 조금 지나서부터 동문(창룡문)까지를 같이 걸어보았다. 산책도 하면서 성곽너머의 마을도 보면서 화성에 대해서 직접 몸으로 체험을 보며 이제 많이 친해진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있었다.

이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산소에 잠시 머물던 곳인 화성행궁을 방문. 이곳에서는 안에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신풍루 앞에서 열린 예정에 없던 퍼포먼스를 보는 것으로 관람을 대신.

 

이어서 전북대학 주용기선생님께서 안내해주신 출판사더페이퍼방문. 무료로 계간사이다”(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 라는 지역잡지를 만드는 출판사. 잡지내용은 오로지 지역에 사는분들의 내용으로만 구성된 아주 특이한 잡지. 출판사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멤버들이었고, 기와집을 개조하여 사무를 보는 곳이었는데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보고 많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너무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하고 싶은 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출판사를 방문하는 것으로 모든 방문일정은 종료. 서울로 돌아온 마지막 프로그램은 광장시장에서 저녁을 먹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는 여기까지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1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데 오랜만에 약간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큐슈로 가면 놀러오라고들 하셨는데 실제로 가면 모른척하시려나 ㅎㅎㅎ

 

그렇게 한국과 일본의 인연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한일미래버스투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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