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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각저생각

노무현대통령 서거

by 소꾸호 2009.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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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의 가해자 정권이었던 민주정의당과 손을 잡고 지금의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을 만든 김영삼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 생각은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의 정치적관심은 그곳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88년도 대학에 들어갔을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데모하지 말아라. 아버지 회사그만둬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였고 많이 보수적이었던 나는 그런 것들이 두려워 사회현상을 보는 것을 주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생이 되었던 해보다는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러 군사정권당과 민주투사가 합쳐졌다는 점에 대해 매우 흥미롭게 세상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가지 기억나는 주요 사건이 있는데 그 첫 번째는 88년 대학교 때 처음 광주사태(그 당시에는 그렇게 불렀다) 사진을 보게 되었다. 설마 이런 일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권력이나 정치를 모르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결국 광주사태에 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모집했던 학교행사(총학행사가 정확할 것 같다)에 독후감까지 제출을 하게 된다.

두번째로는 그 당시 친구이자 지금의 마누라인 승연엄마가 나에게 준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을 일고 내가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번째는 청문회. 그 당시 누구나가 아마 관심을 가지고 보았을 청문회에서 다른 국회의원들은 그냥 따지고 우기고 하는데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상대편을 압도하는 노무현의 모습에서 사실 정의보다는 지적인 만족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은 나랑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따지기만 하는 다른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조금은 경멸했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시민이 각본을 쓴 용비어천가라는 MBC를 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시대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접하는 가에 대해선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학교에서 많은 사람이 민주화를 외치며 데모를 했을 때에도 나는 변함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미팅을 하거나 교회를 다니며 보냈고, 그렇게 세상의 시간은 나와는 상관없이 흘러갔다.

 

이후 내게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한 사건이 바로 글의 처음에 언급한 3당합당 사건이었다. 김영삼이 신군부의 당 민정당과, 구군부의 공화당과 손은 잡은 사건이 내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합당에 반대한다고 한다. 별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나조차도 이거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단 세명만이 그 일에 반대를 한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정의도 철학도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3당합당에 반대한 사람중의 한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선거판에 뛰어든다고 한다. 국회의원, 부산시장, 그리고 또 국회의원. 나는 선거가 있을 때마다 노무현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가장 먼저 보았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바보 노무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이기적인 나의 마음에도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불의를 보아도 참아야 한다. 괜히 끼어들면 너만 손해다. 찍혀서 좋을 것 없다. 나온 돌이 정맞는다. 이런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불의를 보고 참지않고 여기저기 끼어들어 찍혀버린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웬지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들었다.

 

김대중대통령이 그를 수산부장관으로 임명을 했다. 나는 이 사람이라면 아마 분명히 자기가 맡은 업무를 잘할 것이라 생각을 했고 가끔 신문에 나는 그의 동향을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이 때도 같이 일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참 좋게 평가를 하였고 신의가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 후 대통령경선, 나는 토요일마다 TV로 달려갔다. 그의 연설을 들었다. 나의 마음을 울렸고 나의 머리를 만족시켜주었다. 똑똑한 사람은 논리적으로 말하는구나. 신의가 있는 사람은 가슴으로 말하는구나 그렇게 마음속 깊이 응원을 하였다. 아무런 색깔이 맞지 않는 정몽준과의 연합때 아 대통령이 되려면 노무현도 어쩔 수 없는가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문준이 제 풀에 지쳐 포기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많은 안도가 된다.

 

 대통령선거의 날. 그 감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게 된 감격. 그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현재 정치상황을 생각해 볼 때 어쩌면 다시는 느껴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이 된 후 지지자들에게 지금까지는 여러분의 후보였으나 지금부터는 저를 찍지 않는 나머지 국민들의 대통령이기도 하다라는 말을 하고 지지자들이 원하지 않는 FTA, 파병문제를 처리하는 것을 보며 자기의 역할을 위해 자기의 소신까지도 버릴 수 있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게되었고, 나는 후보였던 때보다 더욱더 노무현을 응원하게 되었다.

검사들과의 대화에서의 솔직한 모습, 모든 기득권을 버린 대연정제안, 기자실폐지등등 민감한 사안 하나하나에 나는 대통령의 진지한 고민이 읽어졌고, 내용은 잘 모르지만 노무현이 하는 일이라면 믿음이 갔고 마음속으로 뜨겁게 응원을 했다.

 

퇴임 후 아 좋다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내 입가의 번진 미소가 이제는 편안히 지내실 수있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었다.

 

이 후, 자신이 작성한 문서를 가지고 나갔다고 기록물유출이라고 말하며 시비를 걸었으나 주의 사람들을 너무 괴롭힌다고 그대로 반환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주변사람들이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질 줄 아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고,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저 사람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 까라고 생각하면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523일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족과 친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내가 오직 노무현대통령에게 해 준 것이라고는 대통령선거에서 1표를 준 거 밖에는 없다. 그러나 나는 타협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배웠고,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것을 배웠고, 무엇보다도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노무현대통령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얻었다. 나는 진정 노무현에게 빚진 자이다.

 

부디 이제는 노무현을 그냥 자유롭게 내버려 두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유시민의 서울역분향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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