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콘서트 "차카게살자"에 유시민이 게스트로 나왔다.
착하게 살자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나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10분정도 되는 짧은 스피치였는데, 듣다가 너무 좋아서 한 번 정리를 해 보기로 했다.
플레이시키고, 스톱시키고 하면서 다 옮겨적고,
그 다음에 화면을 보면서 말로 들으면 자연스러운데 글로 옮기면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수정을 했다.
그리고, 크게 이야기 전개에 지장이 없는 내용들은 삭제를 했다.
유투브를 보며, 혼잣말로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 할 수 있을까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옆에서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던 마눌님께서 그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이 감동적인거라고 한다.
나는 같은 말을 해도 그 말에 힘이 없어서 잘 전달이 안된다는 소리겠지. 냉정한 마누라 ㅎㅎㅎ
유투브로 봐야 훨씬 재밌지만, 제 기억에 좀 오래 남게 하려고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유시민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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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잘살자 / 유시민
착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부탁받아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생각을 하다 나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착하게 산다는 게 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착하게 사는 삶의 방식중의 최고는 타인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를 위해서 살다 성공한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해서 사는 이타적인 삶을 실천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민은 그럼 어디까지 착하게 살아야 하지?라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착하게 산다고 하면 남자들은 마하트마 간디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여자들은 데레사수녀님처럼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부 훌륭하고 착한 분들인데 그렇게까지 착하게 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옛날 이야기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그 이야기를 준비를 해 봤습니다.
옛날, 중국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에게 유명한 지식인 맹자가 찾아왔습니다.
맹자가 그 나라를 가면서 왕이 멍청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왕을 왜 멍청하다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조정에서 종을 새로 만들면 갈라지거나 하지 않도록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를 위해 소를 한마리 잡았습니다. 어느날 왕이 우연히 소를 끌려 가는 봤는데 소가 슬픈 눈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습니다. 소를 어디로 데리고 가냐고 물어보니, 종을 새로 만들어서 피를 내서 칠을 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잡으러 갑니다라고 신하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왕은 소가 불쌍해서 소는 살려줘라 라고 하니 그럼 제사 지내지 말까요?라고 신하가 묻습니다. 아니 그럼 안되지 그대신 양을 잡아라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 소문이 밖으로 퍼지면서 첫째, 멍청한 왕이다. 소는 불쌍하고 양은 안 불쌍하냐, 둘째 되게 구두쇠다 소가 아까와서 양을 잡으라고 했다. 이런 소문이 퍼졌습니다.
맹자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왕을 만났는데 왕이 물어봅니다. “선생님! 저도 좋은 왕이 될 수 있을까요?”
맹자가 말하기를 “그럼요. 되고도 남죠”
왕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시죠?” 라고 묻자
맹자가 대답했습니다. “오면서 들으니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일 때문에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왕이 다시 묻습니다. “근데 백성들은 그 일 때문에 나보고 멍청하다고 하고, 인색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맹자가 다시 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왜 소를 살려주라고 하고 양을 잡으라고 했냐하면 소는 눈에 보였고, 양은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소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불쌍했고, 양은 양을 잡으라고 했지만 양은 내 눈에 안 보인다는 거에요. 그것이 멍청한게 아니고 착한 겁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대상에 대해서도 연민의 마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만날 수도 없고 대부분 보이지도 않는 백성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기가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사랑할 줄 알고, 연민의 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노력하면 안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도 안보이는 대상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이야기인데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직접 보지 못하는, 만나지 못하는 많은 나쁜 것들, 사회악, 비극, 슬픔 이런 것들에 대해서 그걸 다 껴안으려고 하면 마하트마 간디나 마더 테레사가 되야합니다. 될 수 있는 사람은 되겠죠. 여러분이나 저는 그렇게 안되잖아요. 그럴 때 우리가 이 맹자의 말에 의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징치할 수 없고,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을 구제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이라도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임한다면 착하게 살 수 있다 저는 그렇게 해석했는데 맞을까요?
여기오신거 참 잘 잘하셨구요, 이게 마당쓸고 돈줍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좋아하는 이승환씨 노래도 듣고, 같이 흔들고, 백혈병 어린이도 돕고.
우리가 착하게 잘 산다는 것은 저는 이런거라고 봐요.
내가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면 더 많이 할 수 있겠죠. 더 큰 능력을 가진다면 더 크게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여기 오신 여러분들은 착하게 잘 살고 계신분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지금 착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발걸음을 좀 더 먼 곳으로 디뎌보고 눈을 더 높이 들어서 더 높이 살펴보고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가진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살면 그러면 되는 거 아니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26살때 김수환추기경님이 카톨릭청년하고 크리스찬이 아닌 비신도 청년들과 같이 간담회를 한 적이 있는데 선배가 오라고 해서 이 모임에 갔었습니다. 가는 길에 명동성당앞 지하도에 어떤 여자분이 아기를 업은채 엎드려서 구걸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안 들키도록 주머니속에서 잘 만져보니 천원짜리 하나와 오백원짜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잠시 고민했죠. 잠시 고민하다 5백원짜리를 넣어줬습니다. 천원짜리는 집에갈 때 차비도 써야하고 이러니까 그냥 지나왔는데 되게 찜찜한 겁니다. 사실 착하게 산다는 거로 하면 다 줘야죠. 근데 다 주면 난 뭘로 집에 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쓸 것을 남겨두고 500원만 주고 왔습니다.
제가 간담회 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추기경님이 그 마음이 좋은 거라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그 고민하는 마음이. 그 고인에 대한 답을 아무도 못 주지만 그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귀한 거라고 말씀을 해 주시고 교회밖에도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으니 교회청년을 잘 들어라 그렇게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그 비슷한 태도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 생각합니다. 늘 망설이고 고민하고 어디까지 해야되지? 이런 고민. 그래서 여러분들께는 제가 여러분들 개개인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여기 오셔서 같이 노래부르고 춤추고 기금전달식도 하면서 생활속에서 이렇게 하는 약간의 번민, 고민, 부족함에 대한 아쉬움. 이런 것들을 느끼는 것 이런 것이 매우 정상적이라는 겁니다. 우리 여기서 못 벗어난다는 거에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들 자신이 굉장히 귀한 존재라는 거. 이것을 늘 확인하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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