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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는이야기

참을 수 없는 훈계의 가벼움 : 2003년 3월 24일 딴지일보

by 소꾸호 2020.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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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남 좀 가르치지 맙시다. 생긴데로 살게 좀 내버려둡시다. 그리고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 고민 좀 하면서 삽시다.

당시 딴지일보에서 본 글을 메모했었네... 같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들에 너무 당했었었나? ^_^

참을 수 없는 훈계의 가벼움   (딴지일보 2003-3-24)

 


[슬픔] 참을 수 없는 훈계의 가벼움 

 

2003.3.24.월요일 

딴지 편집국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육영수 여사의 우아한 올림머리,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자태를 가르키면서, 여자는 저렇게 단정하고 품위 있어야 된다고 가르치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그 80년도에, 세상을 바꾸겠다며 최루탄 속으로 산발한 채 달려나갔던 여대생들은, 내 눈에 정말이지 미친 여자처럼 보였다.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언제 어떤 자리를 가더라도 아홉 시 안에는 일어나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그런 걸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이 깔본다고, 천한 여자라고 욕한다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내 나이 열 일곱 살에, 가끔 해외토픽을 통해서 보던 외국의 환경단체 여자들-길에 텐트를 치고 보름씩 숙식하면서 거대기업과 맞서 싸우던 흙투성이의 그 여자들은 여자로서의 매력을 이미 포기한, 아무렇게나 사는 추한 여자들처럼 보였다. 

 

우리 선생님, 선생님은 매주 가방 검사, 모발과 손톱 검사를 하면서, 가방 속에서 교과서 아닌 책이 나오면 뻇어서 쓰레기통에 버리셨다. 모발이나 손톱이 더러운 아이는 자로 딱, 하고 손등을 때리셨다. 어느날, 가정환경 조사라고 불리우는 시간에 선생님은, 아버지 직업 조사를 효율적으로 하시기 위해 표에 분류된 해당사항에 따라 손을 들게 하셨다. 제일 마지막으로, 집에서 노시는 사람, 그리고 아버지가 안 계신 사람, 할 때 손을 든 아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보고서도 개의치 않으셨다.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의 훈화 시간은 길고 길었다. 더위를 먹은 아이들 몇몇이 휘청거리고 있는 가운데, 교장 선생님은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길에서 껌 씹는 건 가정교육 안된 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는 건 못 배운 깡패들이나 하는 거라고, 요즘 애들이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받아서 세상이 점점 엉망이 되어 간다고,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씀하셨다. 몸 약한 애들 몇 명이 쓰러지고, 선생님이 그애들을 업고 양호실로 뛰어가는 일이 생겨도, 그 기나긴 아침조회는 끝나지 않았다. 

 

어느날 아침 신문을 보던 나는, 그 옛날의 조회시간을 떠올린다. 뜨거운 햇빛과, 호통을 치는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 어지러움. 조선일보의 <취재지침 파문...무엇이 문제인가> 라는 기사에서 나는 얼핏 그 햇빛을 떠올렸다가, 이윽고 차츰 또렷하게 그 확신에 찬 목소리를 기억해낸다. 야단맞는 어린아이가 된다.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이 14일 오전 문화관광부 청사에서 가진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노타이 차림으로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문화관광부 취재 시스템 변경'에 관해 밝히고 있다."(조선일보 2003.03.17) 

 

그 다음 날에는 그 기사를 읽고난 독자의 의견도 실렸다.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놓고 점퍼 차림으로 서서 브리핑하는 모습이란 실로 가관이었다. 국민에게 알 권리를 찾아주려고 하는 기자들 앞에 서서 문화관광부의 정책을 밝히는 자리 아닌가. 장관 이라기 보다는, 촬영에 앞서 스탭들과 미팅하는 영화감독처럼 보였다." 

참을 수 없는 훈계의 가벼움. 십 몇 년 전 어느 봄날, 열중 쉬엇 자세로 운동장에 서 있었던 그때와 똑같은 태양의 번쩍임, 쨍 소리가 날 것만 같은 그 날카로운 햇빛을 느끼며 나는, 참을 수 없는 훈계의 가벼움에 전율한다. 

 

작은 규칙과 작은 도덕, 작은 예의범절을 소리 높여 호통치면서, 정작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눈물은, 타인의 신념에는 침묵하던, 그들의 그 '참을 수 없는 훈계의 가벼움'을, 오늘 이 순간엔 증오한다. 

 

별똥별이 지는 걸 보는 것은, 

내 동갑내기가 세상을 떠난다는 신호란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별똥별이, 

오늘도 지고 또 지는 것을 바라보며. 

Jekyll in j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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