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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는이야기

[추모사]“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 유시춘

by 소꾸호 2020.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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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 그대 있어 진정 행복했나이다 / 유시춘(소설가) 2009-05-28 @써프라이즈 

 

그가 떠나시는 날, 5월의 끝은 서럽게 짙푸르다.

5.16과 5.18이 있어 인간의 욕망과 민주주의, 그 운명과 업보를 뒤돌아보게 하는 날의 끝자락에 ‘위대한 바보’는 우리 곁을 떠나신다.

 

그는 반세기 넘게 허리가 잘리운 반도의 남쪽을 송두리째 장악한 거대한 골리앗에 도전하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그는 빈 손에 돌맹이 세 개 달랑 들고 선 어린 ‘다윗’소년이었다.

골리앗의 성채는 강고하고 드높았다. 다윗소년의 미소와 용기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세에 밀려 골리앗은 잠시 성채를 내주었다. 그 잠시동안 그들은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는 사이 한때 소년을 좋아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소년의 뒤통수에 돌을 던지고 모욕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골리앗의 선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욕망에 부유하고 매몰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착하고 평범한 이웃으로 사는 그에게 힘가진 자들은 잠시 잊고 지냈던 기술을 금방 복원해냈다. 그리고 그에게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융단폭격을 감행했다. 세상의 모든 야비한 기술을 동원했다. 그러는 사이에 모두 침묵했다. 주판을 두드리는 자, 겁먹은 자, 무관심한 자들이 순결한 영혼을 모독하고 짓이겨 밟는데도 모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소년 다윗은 자신의 것을 버리는데 익숙했다. 정몽준이 후보가 되어도 좋다면서 매우 불리한 게임을 받아들였다. 재임 중에는 쓸 수 있는 모든 제왕적 권력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검찰도 경찰도 국정원도 국세청도 간섭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흉악스럽고 부끄러운 지역주의의 덫을 걷어내기 위해 한나라당을 향해 대통령의 권력을 다 주겠노라고 했다.

 

그는 힘과 권위를 태생적으로 쓸 줄 모르는 바보였다. 이른바 ‘선제적 양보’를 좋아하는 속없는 털털이였다. 그런 그가 잠시나마 성채의 주인이 된 것은 21세기 초입에 일어난 일종의 사고였다. 1987년 6월에 거리를 메웠던 시민들의 ‘독재타도’ 함성이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소년 다윗은 성채에 거주하는 5년 내내 비대한 공룡이 된 수도권의 힘을 소외된 지역으로 나누기 위해, 조중동의 독과점 폐해에 대해 그저 ‘말’로만 역설했다. 그는 그가 쓸 수 있는 권력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그는 특권을 천래적으로 싫어하는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군림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가 있는 동안 성채의 주인은 국민이었다.

 

그가 성채를 떠나자 이 땅의 모든 오래된 권력은 삼각파도를 만들어 그를 덮쳤다. 정치권력, 검찰, 언론권력은 승냥이떼가 되어 이 소년다윗을 포위했다. 그들은 낄낄거리며 소년의 고통을 즐겼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이미 세 개의 돌멩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망망대해 위를 배회하는 갈매기처럼 외롭고 고단했다. 오호라, 소년은 그 맑은 숨결을 바치기로 했다. 그것이 그의 결백과 원칙주의를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가 고향의 부엉이 바위에서 발을 떼는 순간, 그의 숨결은 한때 그를 좋아했던 모든 이들의 가슴으로 옮겨붙었다.

 

그의 맑은 숨결에 빙의된 이들은 강물처럼 조문행렬을 이루었다. 미어지는 슬픔과 회한은 비장한 장강을 형성했다.

 

그리운 그의 얼굴, 그리운 그의 노래와 말은 이제 역사가 될 것이다.

오호라, 이 깊은 슬픔을 어이할거나.

아, 가장 순결한 영혼이 탐욕과 권위의 화신인 야비한 자들의 칼 끝에 무너진 이 뒤집힌 현실을 진정 어이할거나.

 

위대한 바보 노무현은 이제 우리 곁은 떠난다.

못다 이룬 꿈은 한 줌 연기가 되어 5월의 저 시퍼런 허공으로 사라진다. 그는 이제 ‘자연의 한 조각’이 되어 애통한 우리를 남겨두고 떠나신다.

그를 만나 잠시나마 행복했다.

이제 해마다 5월이 오면 우리는 5.18과 더불어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산에, 들에, 언덕에, 저 청자빛 하늘에 계실 것이므로.

 

오, 캡틴. 우리들의 바보, 노무현.

그대를 만날 수 있었던 이 땅을 우리는 사랑합니다.

오래된 권위, 야비한 권력, 악마의 덫 ‘지역주의’가 없는 그곳에서 진정 편히 잠드소서.

그대 있어 참으로 행복했나이다.

그대 영전에 신동엽 시인의 그리움을 바치나이다.

 

 

산에 언덕에 / 신동엽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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