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편지가 또 왔다.
이은주님 보세요.
이은주님은 누구세요. 제 친구중에 서울에 사는 이은주님은 없거든요.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제가 기억나게 가르쳐 주시지 않을래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은주님이 기억이 나지 않네요.
덕분에 감기는 다 낳은 것 같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김정민드림
누구일까? 그냥 시작했던 일이 왜 이렇게 복잡하게 되었을까? 나는 이제 뭐라고 답장을 보내나.
태호는 나의 그런 물음에 화를 냈다. 언제까지 정민이에게 연연할 꺼냐고. 남은 사람들은 살아야 되지 않겠냐고.
"직접 찾아가 봐. 공주라면 그리 멀지도 않고 하루면 갔다 올 수 있을꺼야. 내가 은주 너에게 이렇게 화낼 입장은 아닌 걸 알지만, 우리 아무 관계도 아닌 거 알지만, 제발 이젠 정민이 한테서 멀어져. 결혼 했던 것도 아니고 아마 정민이도 은주가 행복해 지는 걸 바랄꺼야."
왠지 눈물이 났다. 정민이가 죽은 후 난 눈물이 내 눈에서 눈물이 말라 버린 줄 알았다. 뭐가 슬펐는지는 잘 모른다. 왜 이렇게 못 있는 걸까 하고 내 자신을 책망했는지도 모른다. 정민이의 슬픈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김정민님 보세요.
아니 저를 벌써 잊으셨어요? 정말 기분이 안 좋습니다.
생각 나시면 저에게 편지 주세요.
이은주드림.
"정민씨, 아마 이 사람은 다중인격자임에 틀림없어. 그래서 다른 인격으로 바뀔때는 필체도 바뀌는 거야. 이거봐 내용도 여태까지랑은 다르게 무례하고, 필체도 약간 이상하잖아. 이건 연구대상이야."
미스주는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편지를 읽었다. 나도 조금은 화가 났다. 다시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이은주님
저는 정말로 기억이 나질 않아요. 이은주님은 누구세요.
기다릴께요. 가르쳐주세요.
김정민드림.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없는데. 왜 이런 편지가 온 것일까. 혹시 태호가 나를 가장해서 보낸 것일까? 왜 그런일을?
"장난이잖아. 뭐 그렇게 화를 내. 그 자식이 어떤 놈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내가 그냥 보냈어."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계속 나와서 난 회사를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태호가 미안하다면서 자꾸 따라왔지만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그럴 입장이 아니란 걸 알지만 정민이 이야기만 한다면 나에게 사과했지만 난 아무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이 미안한 맘을 전달해야 하나. 혹시 정민이가 진짜 살아 있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미안하다는 편지를 쓰기로 했다.
태호는 미안하다며 이 번 주말에 같이 사과하러 가자고 내게 이야기했다. 나도 어떤사람일까가 궁금해져 그 말에 수긍을 했다.
김정민님 죄송합니다.
지난 번에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저는 서울에 사는 이은주라고 합니다.
아마 제가 찾던 김정민이란 사람은 님과 동명이인인것 같습니다.
제가 착각을 해서 정민님에게 폐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번에 공주에 갈일이 생겼는데 그 길에 직접 찾아 뵙고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안녕히계세요.
이은주드림.
아! 동명이인이었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공주에 온다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미스주에게 상담을 하기로 했다. 미스주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었는데 그 날 감기로 같이 일을 하고 난 후 내 이야기를 자주 들어주곤 했다.
"뭐야. 다중인격자가 아니란 말야. 어휴 재미없어."
미스주의 반응은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한 번 만나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잖아. 이은주라는 거 보니까 남자는 아닐테고 그렇게 신경쓰지 않고 가볍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편지에 약속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이번주말에 올지도 모른다는 짤막한 내용뿐. 나도 마음 한 구석에서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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