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공항에서 러브레터라는 책을 사서 읽은 후에 그냥 기억나는데로 한 번 내가 각색을 해보고 나의 언어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한 일. 나의 특성상 결국은 6번만에 그만두었지만 ^^;;
당시 인터넷 게시판에 2,3일에 하나씩 올렸는데 몇몇분이 빨리 올려달라고 댓글을 남겨줘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ㅎㅎㅎ. 없어진 줄 알았던 걸 발견해서 다행이다.
20대중반정도였던 나이라 지금보면 많이 어색하지만 그냥 기념으로 그 상태 그대로 기록을 위해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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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민이 죽은 지 2년이 지났다.
그리고 2월 14일로 3주기를 맞는다. 정민의 어머니는 아직도 그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다. 정민의 사고의 날처럼 오늘도 눈이 내리고 있다.
앞에 있는 산이 내게 너무도 무겁게 다가온다.
"춥지?" 정민과 함께 사고 현장에 있었던 태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다른 사람들은 오늘도 나중에 온대?"
사고 현장에 갔이 있었던 사람들은 언제나 가족들이 다 간 후에 나타났다. 가족들을 도저히 볼 수 없어서 일까, 밤이 되면 한 명 두 명 이 곳에 모이곤 한다. 아마 오늘 밤에도 모두 이 곳에 모여 같이 그 날을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정민이의 가족들과 서울로 돌아갈 것이다. 난 이 산을 빨리 떠나고 싶다. 내가 돌아갈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정민의 어머님과 사촌동생 형석이 달려왔다.
"서울 올라가. 그럼 형석이랑 같이 좀 올라갈래.갑자기 배가 아프데잖아"
서울로 출발하자마자 형석씬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은주씨랑 같이 올라갈라구요. 꾀병좀 부렸어요."
"왜요?"
"그냥 은주씨 너무 오래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위로라도 해 줄까 해서요."
"이젠 괜찮아요.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요."
"저희 집에 잠깐만 들어갔다 가요. 정민이 형 졸업사진이 있거든요. 보고 싶지 않으세요?"
중학교 때의 정민이 모습은 어땠을까. 갑자기 그리움이 물밋들이 밀려왔다.
"그럼 커피 한잔만 주세요."
형석이 가지고 나온 졸업앨범은 얼마전에 열어 본듯 군데군데 손자국이 나 있었다.
공주중학교. 앨범의 맨 앞에 선명하게 쓰여 있는 학교의 이름이 왠지 애틋하게 느껴져왔다. 좋아하는 이의 과거를 열어본다는 설레임. 졸업사진첩에서 은주는 정민을 너무나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정민만 따로 그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사진 속에 한 명 동그랗게 증명사진을 달아놓은 그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정민이었다.
"어 왜 이렇게 혼자 찍었어요?"
"아 졸업하기 바로 전에 서울로 올라와 버렸거든요. 그래서 사진을 찍지 못했어요."
졸업앨범을 덮던 은주는 앨범의 뒷부분이 주소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김정민이란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어 있다. 여기 김정민, 공주군 교동 200번지 "
"아 거기요. 아마 정민이형 살던데는 지금쯤 고속도로가 나서 없어졌을 거에요.이사 온 뒤로 집이 없어졌거든요."
"아 그래요." 대답을 하면서 내 머리속에 그 주소가 깊이 기억되었다.
그 날 저녁, 갑자기 난 정민이 보고 싶어졌다. 난 받아 볼 수 없을 편지를 정민에게 썼다. 길게 그러나 편지 봉투에 넣었을 때는 구차한 내용들이 싫어져 단지 몇 줄만이 남게 되었다.
김정민님 보세요.
어떻게 지내세요.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이은주드림
그리고 난 봉투에 그 주소를 적고 말았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나도 알고 있었다. 고속도록가 되어버린 그 주소에 난 그냥 편지를 보내고 만 것이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 버려질 거라는 생각만이 정민이와의 거리를 더욱 멀게 느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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