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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슬기로운재수생활

13. 수능일

by 소꾸호 2020.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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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4일, 목요일.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일매일 흘러가는 시간 중의 하루이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진수의 1년간의 노력의 결과가 나오는 의미 있는 날이었다.

나는 진수를 시험장소까지 데려다주고 출근을 하기위해 평소 출근시간보다 일찍 준비를 하였다. 진수 엄마는 평소 수능일이었다면 수능 감독을 해야 하지만, 자녀가 수험생인 교사의 경우 수능 감독을 제외시키는 규정이 있어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수능일에도 휴가를 냈다. 평소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하던 나는 이날은 일부러 차를 가지고 출근을 하였다. 시험장 근처에서 진수와 진수 엄마를 내려주고 진수에게  시험을 잘 보라고 말한 후  회사로 출근을 하였다. 

 

제2외국어를 보지 않는 학생은 4시30분정도에 시험이 끝나니, 이것 저것 정리하고 나오면 5시 정도면 나올 것 같았다. 진수 엄마가 수능시험이 끝날 때쯤 진수를 마중 나가겠다고 해서 만나면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끝날 때쯤 되었는데도 연락이 오지 않으니 일도 전혀 손에 잡히지 않고 점점 불안해졌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도 당연히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또 한 번 아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특히 진수가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잘 알고 있다보니 더욱 그랬다.

계속 연락이 오지 않아 약간은 마음을 포기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진수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까지는 학원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편지를 작성하면 학원담당자가 진수에게 전달을 해줬지만 이제는 학원도 퇴소하여 편지를 적어도 보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메모장을 열고 “부치지않은편지" 라는 파일명으로 저장을 했다. 그리고 짧은 편지를 썼다. 

“이제 시험이 끝이 났을거고 결과는 이미 나왔겠지? 아빠 마음이야 진수가 준비한대로 시험을 잘 치뤘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서 전화걸기가 두려워 연락오기를 그냥 기다리고 있다. 

아빠가 좋은 결과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야. 혹시 준비한 것보다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런것까지 진수의 인생이라고 생각해. 

결과가 안 좋았다면 좌절하지말고, 만약에 노력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왔다면 너무 자만하지 않는 아들이 되기를 바란다.  어떤 결과가 되었든 2019년 한해의 기억들이 진수의 인생에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편지를 적고 나서야,  잠시 후 진수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생각보다 늦게 나와서 지금만났다고. 집에가서 가채점을 해봐야겠지만, 진수의 이야기로는 마지막 모의고사정도로 시험을 본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고, 일찍 들어갈테니 같이 저녁먹자고 답변을 보냈다.

회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진수를 보러 집으로 귀가를 했다. 오랜만에 한 번 안아주니 거부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안은 채로 부모님을 기쁘게 많이 기쁘게 해줘서 고맙네라고 하니, 잘 지원해줘서 내가 고맙죠라고 이야기를 하던 우리아들.

 

좋은 아들 연기는 딱 여기까지였다. 같이 맛있는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니 아빠 오기 전에 간단하게 먹었고 PC방에 간다고 나가 버렸다. 결국 수능시험을 본 두번의 저녁은 다 제대로 저녁을 먹어보지 못했다.

진수가 나간 후, 진수엄마에게 조금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4교시 정답은 아직 공개가 되지 않아서 3교시까지만 맞춰봤는데 국어와 수학에서 조금씩 틀렸고, 진수가 예상한대로 10월모의고사 정도로는 본 것 같다고 한다. 

10월 점수정도라면 어느학교정도 지원할 수 있을까하고 진수엄마에게 물어보고 있던 차에 진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4교시 과학 두과목의 정답이 지금 공개가 되서 맞춰봤는데  4교시는 다 맞은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진수엄마가 그렇게 되면 마지막 모의고사보다도 더 잘 봤을 것 같다고 하며 좋아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진수엄마는 새벽부터 피곤했다며 일찍 자겠다고 들어갔다. 작년에도 일찍 들어가서 잤는데, 작년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많이 좋았다.

수능이 끝난 주말부터 수시시험이 시작되었다.

 

두번째라 극구 사양했는데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또 응원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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