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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슬기로운재수생활

16. 발표

by 소꾸호 2020.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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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수능시험이 끝나면 긴 여정이 마무리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수시시험, 발표, 수험생들 사이에 수능5교시 원서영역이라고 불리는 지원학교선택까지.

학교를 정하고 정시 원서를 낸 12월 31일 이후에는 발표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가끔씩 100% 안전한 곳을 한 군데 넣었으면 이렇게 불안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잊어버리려고 노력을 하였다.

 

진수도 기다리는게 지루한지 친구들과 3박4일로 여행을 다녀왔고, 나는 가끔 인터넷사이트에 들어가서 올해는 어느학교 어느학과는 몇점이 컷이 될거야라고 수험생들이나 부모들끼리 전망하는 글을 보며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모의지원을 했던 진학사이트에 점수공개(점공)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가 어느 어느 학교에 지원을 했고, 내 점수는 몇점이다라는 것을 사이트에 등록을 하면 점공을 한 사람들 중의  등수를 내서 보여주는데 매우 많은 사람이 이 점공을 하다보니 신뢰도가 꽤 높다는 것이었다.

 

진수엄마에게 이런 기능이 있다고 이야기해주니 이미 알고 있지만 자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지금 등수를 안다고 하여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발표나올 때까지 그냥 딴 생각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진수도 엄마와 같은 의견. 그러나 나는 상황을 알고 싶은 유혹이 너무 커서 계속 해보자고 하니, 진수엄마는 하고 싶으면 하는데 자기와 진수에게는 절대로 결과를 알리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 

반대를 무릅쓰고 한 점수공개의 결과는 가군은 이미 작년 합격인원보다 한참이 뒤라서 90%이상 불합격. 나군은  현재 작년 커트라인 가까운 곳이어 매우 애매한 상황. 다군은 작년 커트라인등수보다는 아주 조금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점수공개를 안한 사람들의 숫자는 반영이 안된 상황이니 현재의 등수보다 나빠질 수는 있어도 좋아질 수는 없는 상황. 문 닫고 들어가는 전략을 세웠으니 커트라인 근처일 거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서야 그래서 점공을 하지 말라고 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어려운 상황을 누군가와 이야기하여 고통을 나누고 싶었는데 마눌과 진수는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려고만 하면 귀신같이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절대 듣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방으로 도망을 갔다.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연 나만 속만 끓이며 발표날짜만 기다리는 꼴이 되었다.

 

첫 학교의 발표는 1월30일이었다. 2시쯤 발표였는데 2시가 지나자마자 진수에게 문자가 왔다. 최초는 불합격이지만 추가합격번호가 22번이 되었다고. 대입선발은 최초합격자가 발표되고 이 중에 등록을 하지 않은 수만큼 추가합격자를 선발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세곳에 원서를 넣기 때문에 여러 군데를 동시에 합격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가장 가고 싶은 학교에 등록을 하면 등록을 하지 않은 곳은 결원이 생기고 그러면 그 학교에는 추가합격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진수가 지원한 학교의 작년 추가합격자는 20번까지가 합격이었다. 점공을 통해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작년추가합격생보다 뒷 번호를 받았다는 건 안 좋은 신호였다.

 

이 후 가군과 다군의 발표도 있었는데 가군의 경우는 추가합격순위가 작년의 3배도 넘는 번호였기 때문에 불합격과 마찬가지 번호였고, 다군의 경우는 작년 추가합격번호보다는 조금 앞 번호의 추가합격번호를 받았다. 

 

추가합격자의 발표는 2월10일부터 이틀에 한번씩 발표가 났다. 추가합격자 발표가 나면 바로 등록을 해야 하고 만약에 등록을 하지 않으면 그 인원만큼 이틀뒤에 다음 추가 합격자 발표가 나온다. 그렇게 2월17일까지 기다렸는데도 추합이 되지 않으면 올해의 입시는 끝이나고 삼수를 해야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월10일도 2시에 추가합격자 발표를 하였다. 작년 추가합격자가 20번까지였기 때문에 만약에 추합이 되더라도 17일근처까지 가야지 22번이 합격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2시 1분쯤 진수에게서 캡쳐화면 하나가 카톡으로 도착을 했다. 발표화면에 합격이라고 되어있는 화면을 보내준 것이다.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울컥할까봐  진수에게 “축하해! 너무 고생했고 고맙다! 좋은 의사선생님이 되기를 기도할께" 라고 문자를 보내주었다. 진수엄마와만 간단히 통화를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냥 좋아했던 마음을 나누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할머니에게 합격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할머니는 진수를 위해 1년 내내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평소에도 기도를 많이 하시지만 특히 올해는 진수와 사촌동생 2명이 동시에  대학입시가 있다보니 내내 기도를 해주셨다. 그런 할머니다 보니 합격문자를 받고 너무 기쁘셨는지 바로 전화를 주셔서 눈물을 보이셨다. .

 

수능이 끝나고  할아버지께 의대진학을 검토중이라고 말씀드렸는데, 할아버지는 매일저녁 산책길에 진수가 원서를 낸 대학의 병원까지 가서 그 곳의 예수상 앞에서 잠시 기도를 하고 돌아오셨다. 진수의 발표가 10일날 난다고 했는데 나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자 답답하셔서 또 그 병원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그 때 할머니에게 연락을 받으셨다고 좋아하시면서 또 전화가 오셨다.

모든 가족들이 너무 좋아해주니 내 마음도 짠했다. 

 

그 날은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 늦은 시간에 귀가를 했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진수에게셔  다군대학도 추가로 합격을 했다는 연락이 왔다. 결국 진수는 충청도와 강원도에 있는 의과대학 두 군데에 합격을 하며, 1년간의 긴 준비의 시간을 마무리하였다.

 

최종적으로 강원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기로 정하였다.

 

진수를 임신했던 해, 수능감독을 하고 온 진수엄마가 남긴 메모가 떠올랐다.

 

“수능 감독은 무척 힘들었지만 별 사고없이 잘 끝났어. 네가 대학을 갈 즈음에도 이런 국가적인 대규모 입시가 존속할지 모르겠어.

너는 어떤 모습으로 시험을 치르게 될까.

공부를 잘해서,

네가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에 무리없이 합격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엄마 욕심인가?

나중에.

네가 엄마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엄마가 화내면 어쩌지?

걱정이다.

엄마가 그렇게 될까봐.”

 

그 뒤로 20년이 지난 지금도 대규모 대학입시는 존재했다. 그렇지만 엄마로서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잘 기다리고 응원했고, 가고 싶은 학과에 갈 수가 있었다.

 

20년 뒤에는 우리 아들은 어떻게 살고있을까?

 

끝. 

 

원서를 내고 같이 학교에 다녀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때문에 합격자발표이후로는 한 번도 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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